렐릭루키우스 브루투스
로마 왕정이 공화정으로 변해가는 전환기에 활약한 '어리석은 자'. 그의 진정한 모습이란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는 냉철한 개혁자였다.
테마 | 모범이 되는 위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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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릭 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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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기 | 제위에 오르려 했던 카이사르를 암살한 것으로 유명한 부르투스. 그의 공화정에 대한 신념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4) 왕정 로마에서는 왕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시민이 집회, 민회에서 선출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6대 왕으로 의부를 살해한 타르퀴니우스 스페르부스는 민회를 무시하고 7대째 왕이 되어 유력자들을 차례로 살해하며 권력을 휘둘렀다. (7) 타르퀴니우스 왕의 측근 중에는 조카인 루키우스 브루투스가 있었다. 브루투스란 '어리석은 자' 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루키우스는 우둔한 겉모습 안에 왕정타파의 야심을 품은 자였다. (8) 타르퀴니우스 왕이 출진해 있을 때, 왕족에 의해 명예가 더럽혀진 여성 루크레티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계기로 루키우스는 오만한 왕의 일족을 추방하자며 열변을 토했다. 시민은 루키우스의 본모습에 놀라면서도 추방에 찬동하기 시작했다. (10) 타르퀴니우스 왕은 동맹이던 에트루리아 도시로 떠났다. 루키우스는 로마에 원로원이 주도하는 공화정을 도입하고, 루크레티아의 남편과 함께 초대 집정관이 되어 '그 수가 몇이든 왕이든 존재할 수 없으면, 자유를 위협하는 자는 로마에서 추방한다.' 라고 법을 정했다. (11) 그러나, 추방당한 타르퀴니우스 왕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원로원 중에 의석을 갖지 못한 젊은 층을 노려 왕정복고를 꾀한 것이다. 이 음모가 명백해지자 로마 시내는 충격으로 술렁였다. 참가자 중에는 루키아스의 두 아들도 있었던 것이다. (12) 국가전복죄는 처형 대상이다. 그러나, 사사로운 정에 연연해서는 공화정이 성립될 수 없다. 루키우스는 아들들이 고발 내용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사형집행인에게 보낸 다음 보는 앞에서 처형시켰다. (13) 왕정보고의 음모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안 타르퀴니우스 왕은 에트루리아군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했다. 방어전에 나선 루키우스는 왕의아들과 격렬한 일기토를 벌였다. 사촌 형제간의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고, 루키우스는 공화정 설립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14) 최후의 전투에서 루키우스가 일기토에 사용했다는 무기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 루키우스가 전사한 뒤, 그 무기는 격렬한 전투를 벌인 양군 병사들 사이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