렐릭잔의 계승자
제후와 용병으로 구성된 오합지졸에서 국왕의 상비군으로. 리시몽 원사의 군제개혁은 프랑스를 대국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테마 | 프랑스 전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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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릭 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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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기 | 프랑스의 역사가가 쓴 책. 「카페 왕조가 성립할 당시, 왕령은 파리 주변 뿐이었고 왕의 권력 기반도 약했다. 프랑스 왕국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공국 연합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4, 경험치 30, 명성 20) 사학과 학생이 쓴 논문의 일부. 「백년전쟁에서 활약한 인물이라면 잔 다르크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잔이 활약한 시기는 1년 정도에 지나지 않고, 전쟁은 그녀가 죽은지 20년 이상이 흐른 뒤에야 끝났다. 그녀의 뜻을 이어받은 누군가가 전쟁을 종결지은 것일까.」 (7, 경험치 50, 명성 30) 브루타뉴 지방의 명사록. 「아쟁쿠르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포로가 된 귀족 중에 아르투르드 리시몽이 있었다. 어머니는 잉글랜드 왕과 재혼, 형은 프랑스 왕녀와 결혼, 그 자신은 부르고뉴 공녀와 결혼하여 화려한 연척 관계를 자랑했다.」 (9, 경험치 60, 명성 40) 잉글랜드 역사가의 기록. 「잉글랜드의 왕 헨리 5세는, 포로가 된 리시몽의 혈연관계를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엄중히 다뤘다. 이에 리시몽은 잉글랜드를 쓰러트려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11, 경험치 80, 명성 50) 라 퓌셀에 관한 기록. 「잔과 리시몽은 단 한번 힘을 합쳐 파타이에서 싸웠다. 잔은 리시몽을 신뢰하고 등용할 것을 왕에게 진언했지만, 그것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켜 훗날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12, 경험치 100, 명성 70) 프랑스군 설립에 관한 기록. 「잔이 죽은 후 왕의 신뢰를 회복한 리시몽은 군제개혁을 실시했다. 평소 약탈을 거듭하던 용병단을 해산시키고 왕에게 충실한 상비군을 설립한 것이다.」 (13, 경험치 110, 명성 70) 프랑스 역사가의 저서. 「리시몽의 활약은 형 브르타뉴 공을 프랑스 측으로 끌어온 것 뿐만이 아니다. 대립하고 있던 왕가와 부르고뉴 공 가문 사이에 동맹을 성사시켜 백년전쟁 종결과 프랑스 통일을 이끌기도 했던 것이다.」 (14, 경험치 140, 명성 90) 리시몽 원사가 애용하던 전투용 망치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 잔 다르크와 힘을 합쳐 싸웠던 파타이 전투에서도 사용했다고 한다. (15, 경험치 180, 명성 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