렐릭마지막 로마인
호노리우스 황제의 명에 따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맹장 스틸리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 결정된 것도 바로 그 때였다고 한다.
테마 | 동서 로마 제국의 흥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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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릭 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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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기 | 언어학자의 저서 「유럽 제국에서 『황제』를 의미하는 말은 『카이사르』 또는 『임페라토르』에서 기원했다. 『카이사르』는 제정 로마의 기반을 닦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가리키며, 『임페라토르』는 『최고지휘관』이라는 뜻이다.」 (4, 경험치30) 정치학자의 저서 「임페라토르는 군대의 지휘권을 비롯해 강화 체결에 이르는 폭넓은 권한을 가졌다. 제정 초기에는 황제의 심복과 후계자에게 이 지휘권을 맡기기도 했다. 이렇게 임페라토르는 황제의 지휘에 점점 가까워졌다.」 (7, 경험치50) 한 군인의 저서 「로마 황제는 종신제였기 때문에 황제의 능력이 의심스러우면 암살 또는 반란으로 이어졌다. 군인 황제였던 갈리에누스는 팔미라와 갈리아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해 사령관들에게 암살당했다고 전해진다.」 (9, 경험치60) 정치학자의 저서 「최고 권력자가 전선에 붙어 있으면 정무에 지장이 생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도미나투스 제도를 강화시키고 황제가 전선 사령관을 임명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평범한 황제라도 충실하고 유능한 신하가 있다면 옥좌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11, 경험치80) 역사학자의 저서 「395년에 네오도시우스 황제가 몰락하면서 로마제국은 동서로 갈라졌다.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는 겨우 10살이었으며, 『마지막 로마인』이라 불리던 스틸리코가 후견인으로 임명되어 제국의 방어를 위해 노력했다.」 (13, 경험치110) 역사학자의 저서 「서로마 제국의 장군 스틸리코는 반달족과 로마인 사이에서 태어난 탓에 로마인 관료들로부터 반감을 샀고, 골치아픈 이민족 토벌을 떠맡게 되었다.」 (15, 경험치130) 역사학자의 저서 「호노리우스 황제가 성장한 뒤, 스틸리코는 이민족과 내통했다는 소문으로 인해 고립되었다. 어리석었던 호노리우스 황제는 아첨에 속아 궁정에 있던 스틸리코파 인물들을 처형했다.」 (16, 경험치160) 역사학자의 저서 「스틸리코는 쿠데타를 진언하는 부하들을 물리치고 궁정으로 갔으나, 황제는 그에게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스틸리코는 태연하게 형을 받았다. 이미 자신의 죽음과 서로마 제국의 붕괴를 예측하고 이던 것은 아니었을까.」 (17, 경험치200) 역사학자의 저서 「스틸리코를 따르던 군대는 소멸했고, 유능한 장군과 병력을 잃은 호노리우스 황제는 불과 몇개월 뒤의 로마 약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로마인』의 죽음이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도 볼수 있다.」 (18, 경험치240) |